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内容简介 · · · · · ·
张都暎回忆录
作者简介 · · · · · ·
전 국방장관. 평안북도 용천 출신. 5.16 당시 육군참모총장을 지냈다. 1962년 미국으로 건너갔으며, 1993년까지 웨스턴 미시간대에서 교수를 지내다가 은퇴했다. 2012년 8월 3일 향년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.
目录 · · · · · ·
제1부 일제치하 성장기(1923. 1. 23 - 1945. 12. 30)
제1장 나의 가문과 유년시절
입용(入龍)후 20대손 = 47
기독교 신앙에서 자라다 = 48
제2장 보통(초등)학교시절
6살에 보통학교 입학 = 56
· · · · · · (更多)
제1장 나의 가문과 유년시절
입용(入龍)후 20대손 = 47
기독교 신앙에서 자라다 = 48
제2장 보통(초등)학교시절
6살에 보통학교 입학 = 56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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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1부 일제치하 성장기(1923. 1. 23 - 1945. 12. 30)
제1장 나의 가문과 유년시절
입용(入龍)후 20대손 = 47
기독교 신앙에서 자라다 = 48
제2장 보통(초등)학교시절
6살에 보통학교 입학 = 56
일본인들의 차별대우를 느끼기 시작하다 = 58
8살에 어머니 여의고 할머니손에 자라다 = 59
제3장 고등보통학교시절
12살때부터 하숙생활 = 62
국수주의 교장 부임으로 학교는 군대화 = 63
제2중·일전쟁 발발과 학교의 병영화 = 65
학교생활 싫어지고 한때 말까지 더듬어 = 67
학제개편과 창씨개명에 한없는 모욕과 울분느껴 = 69
여학생에 첫연정 = 72
제4장 동경유학시절
대학 입학위해 동경으로 = 74
동양대학 예과에 입학 = 74
태평양전쟁 발발로 대학생활은 학문보다 군사훈련에 치중 = 75
美공군기의 동경시 폭격 = 78
한국학생 강제징집보도에 급거 귀국길에 올라 = 80
배안에서 군입대 가용, 불응하자 마구 폭행 = 83
귀가했으나 결국은 강제입대 = 87
제5장 학도병 시절
입대 첫날 말할 수 없는 서글픔느껴 = 89
눈물의 면회, 통한의 생이별 = 90
입대 20일만에 화물열차에 실려 북으로 = 92
3일만에 전쟁터인 중국 서주에 도착 = 94
수송대에 배치, 혹독한 신병 훈련받아 = 96
탈영 제1호, 장준하씨의 탈출성공 = 99
간부 후보생으로 진급과 동시 소주로 이동 = 101
이질검사 입원으로 동경전차부대 전보 모면 = 104
초급장교 후보생교육, 남경 금릉부대에서 = 105
후보생에서 장교로 교육대 교관으로 보직 = 108
일본천황의 항복발표 = 110
제대 역설한 시사논문 = 114
전승축하와 혼란에 빠진 중국수도 남경 = 116
제6장 해방, 제대, 그리고 귀국
제대위해 처음만난 李씨 내게 용기줘 = 119
봉씨의 호의와 제대 = 121
제대한 16명, 무궁단 조직 = 122
정체불명의 광복군지대 사령관들 = 124
험난한 귀국행로 = 126
무궁단, 육로 해로 귀국반으로 불렬 = 126
서주에 도착한 륙로 귀국반 10명 또 분열 = 129
천진에서 피난민 열차타고 산해관(만주)로 = 131
만주에서 본 소련군의 만행 = 136
독립의 용군 입대강요에 또 곤욕 = 137
소련군, 열차에 난입 폭행 약탈 자행 = 138
목불인견의 생지옥 봉천시 = 140
드디어 압록강 다리를 건너 조국땅에 돌아오다 = 143
귀국의 기쁨도 잠시, 소련군 점령하의 현실에 실망 = 145
모교 東中학교의 선생님이 되다 = 148
신의주학생 반공의거사건 발생하다 = 151
초라한 모습의 김일성 방문 = 153
숙부와 함께 서울로 월남 = 154
제2부 직업군인시절 6·25전쟁과 5·16정변(1946. 1. 1-1962. 8. 28)
제1장 월남후 피난민신세
진로모색 = 161
이응준씨를 찾아가다 = 164
제2장 직업군인이 되다
군사영어 학교에 입학 = 166
소위로 임관 직업군인 생활시작 = 167
군산 중대장으로 영전 = 170
불평중대 통솔하여 제3대대 창설 = 171
육군사관학교생도대 중대장으로 = 173
박정희를 태릉사관학교에서 처음 만나다 = 174
부산의 5연대장으로 중요 지휘관이 되다 = 175
여순사건(麗順事件)에 출동하다 = 177
경남지구 공비토벌 작전 지휘 = 178
陸本情報局長에 취임 = 181
6·25직전의 情報局 활동 = 182
북한의 위장平和 = 184
以北대표 轉向工作 = 185
북한대표 설득시켜 對北放送 = 188
6월24일 북괴군의 동태 = 191
제3장 6·25 전쟁
북괴군의 전면공격 = 193
작전 정보과의 박정희 문관 = 194
陸本철수하라 = 195
보트로 漢江을 건너다 = 196
朴正熙문관, 잔류장병 철수를 지휘 = 198
내 건의로 朴正熙문관, 소령으로 복직시켜 = 200
북괴군의 암호통신 해독 = 202
10월 1일 38선 돌파와 국군의 날 제정 = 203
승리와 전쟁의 도(道) = 204
제9사단 창설과 朴正熙를 참모장으로 기용 = 205
9사단장에서 6사단장으로 전선에 뛰어들어 = 206
사단장의 첫날밤 = 208
중공군의 공격으로 철수를 거듭 = 209
6각 靑星의 6사단 = 210
加平一春川지구 공격전 = 212
中共軍과 대격전 = 214
밴플리트 장군의 사단방문 = 216
龍門山전투의 시작 = 218
사주방어(四周防禦)전법의 창안 = 218
사주방어(四周防禦)전법 주효(奏效) = 220
전사에 빛나는 龍門山 戰鬪의 大勝 = 221
평생 잊지 못할 기적적인 華川발전소 점령 = 223
白岩山 공격을 준비 = 226
백암산 공격에 앞서 백석산을 공격 점령 = 227
元山입성을 호언하다 = 228
뜻밖의 轉出 = 230
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전적 山河 = 231
濟州신병훈련소장 취임 = 233
李대통령과 밴플리트 장군의 방문 = 235
5사단장으로 激戰지휘하여 승리 = 237
진지 死守를 명령 = 239
步戰砲空의 협공 = 241
제4장 전정후 참모총장이 되기까지
드디어 정전 = 243
최고의 무공훈장 태극 무공훈장을 2개나 받아 = 243
군단장 승진과 朴正熙준장 발탁 = 244
백형숙(白亨淑)과의 정식결혼(1954. 10. 29) = 245
육본의 각 참모직을 역임 = 248
대만방문 = 249
군사사절로 터키방문 = 250
제2군사령관으로 임명되다 = 252
宋堯讚총장, 朴正熙장군을 軍需基地 司令官에 = 253
大邱와 光州의 데모, 평화적으로 통제 = 256
60년 9월17일, 예편 신성처 제출 = 257
예편신청 반려되다 = 259
朴正熙를 2군 부사령관으로 부르다 = 261
英雄心강했던 朴正熙 = 262
나와 朴正熙의 다른 점 = 264
元容德장군 軍裁재판장으로 = 265
생각지도 않은 陸參總長발령 = 266
제5장 5·16 군사정변
충격과 경악으로 맞은 5·16 = 269
나는 사전에 5·16을 전혀 몰랐다 = 270
날조된 朴正熙의 증언 = 272
나와 朴正熙와는 쿠데타 모의를 할 지위나 입장이 아니었다 = 274
5·16계획서도 받은 바 없다 = 275
20년 동안 반복되는 허위와 날조 = 277
李哲熙 방첩부대장, 중간에서 보고를 차단 = 280
李哲熙의 허위보고 = 281
세갈래 쿠데타說 우려 = 284
張勉총리, 族靑係쿠데타說 우려 = 284
朴正熙쿠데타 說 조사를 지시 = 286
張昌國, 金容培장군과 銀星에서 저녁식사 = 289
30사단의 叛乳기도를 보고 받다 = 290
5월 15일 밤 모든 야간훈련 취소를 지시 = 291
술취한 朴正熙장군의 쿠데타보고 = 293
어이없는 朴正熙소장의 편지 = 294
金在春대령의 허위보고, 명령대로 했습니다 = 296
충격적인 海兵여단의 한강교를 통한 서울시내 진입보고 = 298
공수단도 뒤따라 서울로 = 299
李想國준장에게 鎭壓軍출동을 지시 = 300
6군단 포병단, 陸本을 점령 = 301
출동부대 원대복귀안을 매그루더장군과 협의 = 302
朴正熙소장, 쿠데타의 지휘를 간청 = 304
出動부대의 原위치복귀를 명령 = 305
나와 朴正熙소장, 윤보선 대통령을 만나다 = 307
'올 것이 왔구나'는 무슨 의미였나 = 308
쿠데타에 贊反양론 對立 = 310
매그루더 유엔군사령관, 강제진압을 고집 = 312
6군단 포병단의 復歸를 지시 = 313
陸參總長인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결심 = 314
드디어 軍事革命委員會의장직을 수락 = 316
陸士생도 혁명지지 行進에 訓示 = 318
張勉총리를 만나 수습을 부탁 = 320
朴正熙소장, 尹대통령의 下野성명에 冷笑的 = 321
이 사람들, 장관자리 얻으려고 쿠데타 했나 = 323
朴正熙장군과의 意見충돌과 대립 = 324
國歌再建非常置법 파동 = 328
民政復歸가 民政移讓으로 대치되다 = 331
朴正熙장군과 最後의 面談 = 332
朴正熙장군 無期限 軍政을 주장 = 334
드디어 최고회의의장과 총리직에서 물러나다 = 335
쿠데타수습 못한 데 대한 反省 = 337
대한민국과 국민에게 죄를 졌다 = 338
제3부 美國 유학생활(1962. 8. 30 - 1969. 8. 30)
제1장 정치망명 유학길
미시간 대학으로 미국 유학길에 = 343
역경 속의 영감 = 346
갖가지 상념으로 지샌 망명 첫날밤 = 349
대학원 부원장 청강을 권했으나 정식수강을 고집 = 351
복잡하고 까다로운 전학절차 = 354
제2장 힘들었던 학부공부
영어시험 치르고 정식등록 = 357
학이제일(學而第一) 불치하문(不恥下問)을 좌우명으로 = 359
스미스 학생처장의 치하 = 360
고생보다 더 고통스런 고독 - 기도로 극복 = 362
몰래 빨래해주던 李대위등 잊을 수 없어 = 354
힘든 두 번째 학기공부 - 인내와 각고의 노력으로 따라가 = 367
아내 재회와 비행기표 환불 = 369
세 번째 학기 - 기초 부족한 필수과목과 많은 독서숙제에 고통 = 373
1년반 만에 힘든 정치학과에서 학사자격 받아 = 376
제3장 대학원 석사과정
한경직 목사의 연락으로 미국의 장학금 받게돼 = 378
미시간 대학으로 가게된 연유 = 380
조부모님 별세소식에 오열 = 382
대학원에 진학 국제정치학 전공 = 384
스미스교수, 5·16에서 내가 취한 행동 옳다고 평가 = 389
인도의 對韓外交정책 논문으로 석사학위받아 = 391
제4장 박사과정
부친별세 비보에 또 슬픔 = 393
앤 아버 한인회 결성 = 395
일부 재벌의 학생들 도박에 빠져 = 398
교포수 늘어나면서 더 바뻐져 = 400
어렵기로 유명한 미시간 정치학 박사과정 = 401
월남사태를 박사 논문으로 = 404
전반예비시험전 필수 외국어(日語, 中國語) 시험에 합격 = 407
전반 예비시험에 합격 정치학박사 후보생이 되다 = 409
박사학위 논문작성에 주력 = 411
현지 조사차 월남에 가기로 = 413
성묘차 잠시 귀국 = 415
朴대통령 면담 - 간접적으로 귀국을 종용 했으나 = 420
사이공 도착 채명신 장군의 영접받아 = 422
내가 창설한 제9사단(백마부대) 시찰에 깊은 감회 = 427
한국군 對民사업 잘해 = 430
포로 심문 - 다수의 월남국민들 越共軍을지지 = 432
연합군 총사령부와 월남군 총사령부 방문 = 434
귀가 = 438
박사논문제목, 월남공산주의 혁명의 본질과 그 특징 = 440
아내의 급료로 생계유지 = 442
7년만에 정치학 박사학위 받아 = 444
Wisconsin 주립대학 초빙 교수로 제 2의 인생을 출발하다 = 447
제4부 제2의 인생 교수생활(1969. 9 - 1993. 6)
제1장 Wisconsin대학교 재직시절
객원교수로 첫 강의 - 영어표현력 부족으로 진땀이 나기도 = 453
두 번째 하기(1970. 봄) = 456
Western Michigan 주립대학으로 전근 = 458
제2장 캄보디아 방문
캄보디아 방문 초청 받아 = 461
캄보디아 政情 = 462
캄보디아 방문 = 464
제2차 월남방문 = 467
그후의 월남과 캄보디아 = 469
제3장 Western Michigan대학교 재직시절
정든 Oshkosh를 떠나 Kalamazoo로 이사(1971. 8 중순) = 472
General Studies를 강조하는 Western Michigan University = 475
Western Michigan대학교로 전근 후 2년만에 1차 영구교수직 심사 통과 = 478
Western Michigan에 한국문제 연구소 설치 = 480
Nixon Doctrine과 한반도 정세 = 483
제4장 평양방문
美 정부로부터 평양방문 요청 받다 = 491
숙고 끝에 초청장을 받고 가기로 = 497
평양 향발(1974. 7. 9) = 500
모스크바 도착(1974. 7. 13) = 502
평양행 기체안에서 = 507
평양 도착(1794. 7. 16) = 511
김중린과의 공식면담 = 513
평양주변 시찰 - 1974년 7월 = 514
한산한 평양거리 = 516
정준기가 베푼 만찬 = 516
혁명박물관 관람 = 517
학술토론 자유롭지 못한 평양 학자들 = 519
피바다 가극관람 = 521
청산리 협동농장과 탁아소 시찰 = 522
平統委, 美 정부의 정책전달 여부에 또 촉각 = 524
2차 학술토론 = 526
복숭아 주는 여인에게 연민의 정이 북바쳐 = 528
신변 안전위해 전담 취사반 편성 = 530
평양 산업 박물관 시찰 = 530
김일성 예방 종용 받았으나 = 532
교육시설 시찰 = 533
아동궁전 = 535
김중린등과 2차회의 = 536
나의 평화통일 방안을 구체적으로 설명 = 537
방문 마지막날 평양관광 = 544
출발 마지막 회의 = 548
5천달러 단호히 거절하고 돌려줘 = 552
평양을 떠나 귀환 길에(1974. 7. 26) = 554
귀가 후 한반도 생각 = 558
南昌祐교수의 동경(東京) 기자회견 = 562
북한공작원에게 속았다는 보도에 충격 = 563
한국정부의 악선전과 음해 = 566
평양방문후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信念이 굳어져 = 569
제5장 안정된 가정생활
미국의 출중한 교육자상 받아 = 570
아내는 교수이면서 가정에 충실한 현모양처 = 571
강도 잡아 유명해진 장남 효수 = 572
자녀들 모두 잘 자라 = 573
나의 자녀 교육방침 = 574
차남 경수는 육상선수에 우등생으로 의예과 진학 = 576
수학에 출중한 3남 진수는 농구선수로 지역에서 유명해져 = 576
외동딸 윤화는 전학년 ALL A학점으로 하버드에 입학 = 578
막내 완수는 정구·농구·골프의 주장을 하며 역시 하버드에 입학 = 581
6년만에 영구직 교수 임명 받아 = 583
美 시민권 신청자격 있으나 안해 = 583
생전 처음 단란한 가정생활 = 584
조국을 생각하면 몹시 그립고 안타까워 = 585
박정희 피살소식에 '올 것이 왔구나' 생각 = 586
12·12는 군사반란 = 587
전두환 일당의 국권탈취는 5·16에 이은 제2의 군사정변 = 589
제6장 한국문제 집중연구와 그 논문발표
美 정치학회에서 '한국정치정세' 논문 발표 = 590
주미공사 손장래장군의 訪韓요청을 받고 = 593
13년만의 한국방문 = 595
또 정보부의 감시받아 = 597
전두환에게 민정복귀를 직접 말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애석 = 600
Stanford 대학교 Hoover 연구소의 초빙학자로 = 601
북한 平統委의 초청을 거절 = 602
Hoover에서 연구한 70년대 한반도 內外문제들 = 605
연구결론, 남북대화는 재개될 것이고 4강은 남북한을 교차승인할 것 = 612
연구논문, Asian Affair 誌등에 실려 = 614
또 하나의 논문 '대한민국의 국가발전과 육군의 역할' 발표 = 616
정교수로 승진(1987년) = 624
앤아보에 있는 미시간대학교에 한국문제연구소 설치 = 626
'남북통일에 대한 조망' 논문발표 = 626
대학원생들에게 가르친 동북아 정치론 = 633
제7장 명예교수로 은퇴
은퇴요청 서한 보내면서 만감이 교차 = 639
오랜만에 온 가족과 친지들이 모인 고희 축하연 = 640
나의 軍복무와학문연구의 근본목적은 조국의 평화통일과 자유민주체제 건설 = 642
4반세기 교수생활에서 명예교수로 은퇴 = 646
회고록 집필을 끝내면서 = 649
편집을 마치고 = 657
· · · · · · (收起)
제1장 나의 가문과 유년시절
입용(入龍)후 20대손 = 47
기독교 신앙에서 자라다 = 48
제2장 보통(초등)학교시절
6살에 보통학교 입학 = 56
일본인들의 차별대우를 느끼기 시작하다 = 58
8살에 어머니 여의고 할머니손에 자라다 = 59
제3장 고등보통학교시절
12살때부터 하숙생활 = 62
국수주의 교장 부임으로 학교는 군대화 = 63
제2중·일전쟁 발발과 학교의 병영화 = 65
학교생활 싫어지고 한때 말까지 더듬어 = 67
학제개편과 창씨개명에 한없는 모욕과 울분느껴 = 69
여학생에 첫연정 = 72
제4장 동경유학시절
대학 입학위해 동경으로 = 74
동양대학 예과에 입학 = 74
태평양전쟁 발발로 대학생활은 학문보다 군사훈련에 치중 = 75
美공군기의 동경시 폭격 = 78
한국학생 강제징집보도에 급거 귀국길에 올라 = 80
배안에서 군입대 가용, 불응하자 마구 폭행 = 83
귀가했으나 결국은 강제입대 = 87
제5장 학도병 시절
입대 첫날 말할 수 없는 서글픔느껴 = 89
눈물의 면회, 통한의 생이별 = 90
입대 20일만에 화물열차에 실려 북으로 = 92
3일만에 전쟁터인 중국 서주에 도착 = 94
수송대에 배치, 혹독한 신병 훈련받아 = 96
탈영 제1호, 장준하씨의 탈출성공 = 99
간부 후보생으로 진급과 동시 소주로 이동 = 101
이질검사 입원으로 동경전차부대 전보 모면 = 104
초급장교 후보생교육, 남경 금릉부대에서 = 105
후보생에서 장교로 교육대 교관으로 보직 = 108
일본천황의 항복발표 = 110
제대 역설한 시사논문 = 114
전승축하와 혼란에 빠진 중국수도 남경 = 116
제6장 해방, 제대, 그리고 귀국
제대위해 처음만난 李씨 내게 용기줘 = 119
봉씨의 호의와 제대 = 121
제대한 16명, 무궁단 조직 = 122
정체불명의 광복군지대 사령관들 = 124
험난한 귀국행로 = 126
무궁단, 육로 해로 귀국반으로 불렬 = 126
서주에 도착한 륙로 귀국반 10명 또 분열 = 129
천진에서 피난민 열차타고 산해관(만주)로 = 131
만주에서 본 소련군의 만행 = 136
독립의 용군 입대강요에 또 곤욕 = 137
소련군, 열차에 난입 폭행 약탈 자행 = 138
목불인견의 생지옥 봉천시 = 140
드디어 압록강 다리를 건너 조국땅에 돌아오다 = 143
귀국의 기쁨도 잠시, 소련군 점령하의 현실에 실망 = 145
모교 東中학교의 선생님이 되다 = 148
신의주학생 반공의거사건 발생하다 = 151
초라한 모습의 김일성 방문 = 153
숙부와 함께 서울로 월남 = 154
제2부 직업군인시절 6·25전쟁과 5·16정변(1946. 1. 1-1962. 8. 28)
제1장 월남후 피난민신세
진로모색 = 161
이응준씨를 찾아가다 = 164
제2장 직업군인이 되다
군사영어 학교에 입학 = 166
소위로 임관 직업군인 생활시작 = 167
군산 중대장으로 영전 = 170
불평중대 통솔하여 제3대대 창설 = 171
육군사관학교생도대 중대장으로 = 173
박정희를 태릉사관학교에서 처음 만나다 = 174
부산의 5연대장으로 중요 지휘관이 되다 = 175
여순사건(麗順事件)에 출동하다 = 177
경남지구 공비토벌 작전 지휘 = 178
陸本情報局長에 취임 = 181
6·25직전의 情報局 활동 = 182
북한의 위장平和 = 184
以北대표 轉向工作 = 185
북한대표 설득시켜 對北放送 = 188
6월24일 북괴군의 동태 = 191
제3장 6·25 전쟁
북괴군의 전면공격 = 193
작전 정보과의 박정희 문관 = 194
陸本철수하라 = 195
보트로 漢江을 건너다 = 196
朴正熙문관, 잔류장병 철수를 지휘 = 198
내 건의로 朴正熙문관, 소령으로 복직시켜 = 200
북괴군의 암호통신 해독 = 202
10월 1일 38선 돌파와 국군의 날 제정 = 203
승리와 전쟁의 도(道) = 204
제9사단 창설과 朴正熙를 참모장으로 기용 = 205
9사단장에서 6사단장으로 전선에 뛰어들어 = 206
사단장의 첫날밤 = 208
중공군의 공격으로 철수를 거듭 = 209
6각 靑星의 6사단 = 210
加平一春川지구 공격전 = 212
中共軍과 대격전 = 214
밴플리트 장군의 사단방문 = 216
龍門山전투의 시작 = 218
사주방어(四周防禦)전법의 창안 = 218
사주방어(四周防禦)전법 주효(奏效) = 220
전사에 빛나는 龍門山 戰鬪의 大勝 = 221
평생 잊지 못할 기적적인 華川발전소 점령 = 223
白岩山 공격을 준비 = 226
백암산 공격에 앞서 백석산을 공격 점령 = 227
元山입성을 호언하다 = 228
뜻밖의 轉出 = 230
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전적 山河 = 231
濟州신병훈련소장 취임 = 233
李대통령과 밴플리트 장군의 방문 = 235
5사단장으로 激戰지휘하여 승리 = 237
진지 死守를 명령 = 239
步戰砲空의 협공 = 241
제4장 전정후 참모총장이 되기까지
드디어 정전 = 243
최고의 무공훈장 태극 무공훈장을 2개나 받아 = 243
군단장 승진과 朴正熙준장 발탁 = 244
백형숙(白亨淑)과의 정식결혼(1954. 10. 29) = 245
육본의 각 참모직을 역임 = 248
대만방문 = 249
군사사절로 터키방문 = 250
제2군사령관으로 임명되다 = 252
宋堯讚총장, 朴正熙장군을 軍需基地 司令官에 = 253
大邱와 光州의 데모, 평화적으로 통제 = 256
60년 9월17일, 예편 신성처 제출 = 257
예편신청 반려되다 = 259
朴正熙를 2군 부사령관으로 부르다 = 261
英雄心강했던 朴正熙 = 262
나와 朴正熙의 다른 점 = 264
元容德장군 軍裁재판장으로 = 265
생각지도 않은 陸參總長발령 = 266
제5장 5·16 군사정변
충격과 경악으로 맞은 5·16 = 269
나는 사전에 5·16을 전혀 몰랐다 = 270
날조된 朴正熙의 증언 = 272
나와 朴正熙와는 쿠데타 모의를 할 지위나 입장이 아니었다 = 274
5·16계획서도 받은 바 없다 = 275
20년 동안 반복되는 허위와 날조 = 277
李哲熙 방첩부대장, 중간에서 보고를 차단 = 280
李哲熙의 허위보고 = 281
세갈래 쿠데타說 우려 = 284
張勉총리, 族靑係쿠데타說 우려 = 284
朴正熙쿠데타 說 조사를 지시 = 286
張昌國, 金容培장군과 銀星에서 저녁식사 = 289
30사단의 叛乳기도를 보고 받다 = 290
5월 15일 밤 모든 야간훈련 취소를 지시 = 291
술취한 朴正熙장군의 쿠데타보고 = 293
어이없는 朴正熙소장의 편지 = 294
金在春대령의 허위보고, 명령대로 했습니다 = 296
충격적인 海兵여단의 한강교를 통한 서울시내 진입보고 = 298
공수단도 뒤따라 서울로 = 299
李想國준장에게 鎭壓軍출동을 지시 = 300
6군단 포병단, 陸本을 점령 = 301
출동부대 원대복귀안을 매그루더장군과 협의 = 302
朴正熙소장, 쿠데타의 지휘를 간청 = 304
出動부대의 原위치복귀를 명령 = 305
나와 朴正熙소장, 윤보선 대통령을 만나다 = 307
'올 것이 왔구나'는 무슨 의미였나 = 308
쿠데타에 贊反양론 對立 = 310
매그루더 유엔군사령관, 강제진압을 고집 = 312
6군단 포병단의 復歸를 지시 = 313
陸參總長인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결심 = 314
드디어 軍事革命委員會의장직을 수락 = 316
陸士생도 혁명지지 行進에 訓示 = 318
張勉총리를 만나 수습을 부탁 = 320
朴正熙소장, 尹대통령의 下野성명에 冷笑的 = 321
이 사람들, 장관자리 얻으려고 쿠데타 했나 = 323
朴正熙장군과의 意見충돌과 대립 = 324
國歌再建非常置법 파동 = 328
民政復歸가 民政移讓으로 대치되다 = 331
朴正熙장군과 最後의 面談 = 332
朴正熙장군 無期限 軍政을 주장 = 334
드디어 최고회의의장과 총리직에서 물러나다 = 335
쿠데타수습 못한 데 대한 反省 = 337
대한민국과 국민에게 죄를 졌다 = 338
제3부 美國 유학생활(1962. 8. 30 - 1969. 8. 30)
제1장 정치망명 유학길
미시간 대학으로 미국 유학길에 = 343
역경 속의 영감 = 346
갖가지 상념으로 지샌 망명 첫날밤 = 349
대학원 부원장 청강을 권했으나 정식수강을 고집 = 351
복잡하고 까다로운 전학절차 = 354
제2장 힘들었던 학부공부
영어시험 치르고 정식등록 = 357
학이제일(學而第一) 불치하문(不恥下問)을 좌우명으로 = 359
스미스 학생처장의 치하 = 360
고생보다 더 고통스런 고독 - 기도로 극복 = 362
몰래 빨래해주던 李대위등 잊을 수 없어 = 354
힘든 두 번째 학기공부 - 인내와 각고의 노력으로 따라가 = 367
아내 재회와 비행기표 환불 = 369
세 번째 학기 - 기초 부족한 필수과목과 많은 독서숙제에 고통 = 373
1년반 만에 힘든 정치학과에서 학사자격 받아 = 376
제3장 대학원 석사과정
한경직 목사의 연락으로 미국의 장학금 받게돼 = 378
미시간 대학으로 가게된 연유 = 380
조부모님 별세소식에 오열 = 382
대학원에 진학 국제정치학 전공 = 384
스미스교수, 5·16에서 내가 취한 행동 옳다고 평가 = 389
인도의 對韓外交정책 논문으로 석사학위받아 = 391
제4장 박사과정
부친별세 비보에 또 슬픔 = 393
앤 아버 한인회 결성 = 395
일부 재벌의 학생들 도박에 빠져 = 398
교포수 늘어나면서 더 바뻐져 = 400
어렵기로 유명한 미시간 정치학 박사과정 = 401
월남사태를 박사 논문으로 = 404
전반예비시험전 필수 외국어(日語, 中國語) 시험에 합격 = 407
전반 예비시험에 합격 정치학박사 후보생이 되다 = 409
박사학위 논문작성에 주력 = 411
현지 조사차 월남에 가기로 = 413
성묘차 잠시 귀국 = 415
朴대통령 면담 - 간접적으로 귀국을 종용 했으나 = 420
사이공 도착 채명신 장군의 영접받아 = 422
내가 창설한 제9사단(백마부대) 시찰에 깊은 감회 = 427
한국군 對民사업 잘해 = 430
포로 심문 - 다수의 월남국민들 越共軍을지지 = 432
연합군 총사령부와 월남군 총사령부 방문 = 434
귀가 = 438
박사논문제목, 월남공산주의 혁명의 본질과 그 특징 = 440
아내의 급료로 생계유지 = 442
7년만에 정치학 박사학위 받아 = 444
Wisconsin 주립대학 초빙 교수로 제 2의 인생을 출발하다 = 447
제4부 제2의 인생 교수생활(1969. 9 - 1993. 6)
제1장 Wisconsin대학교 재직시절
객원교수로 첫 강의 - 영어표현력 부족으로 진땀이 나기도 = 453
두 번째 하기(1970. 봄) = 456
Western Michigan 주립대학으로 전근 = 458
제2장 캄보디아 방문
캄보디아 방문 초청 받아 = 461
캄보디아 政情 = 462
캄보디아 방문 = 464
제2차 월남방문 = 467
그후의 월남과 캄보디아 = 469
제3장 Western Michigan대학교 재직시절
정든 Oshkosh를 떠나 Kalamazoo로 이사(1971. 8 중순) = 472
General Studies를 강조하는 Western Michigan University = 475
Western Michigan대학교로 전근 후 2년만에 1차 영구교수직 심사 통과 = 478
Western Michigan에 한국문제 연구소 설치 = 480
Nixon Doctrine과 한반도 정세 = 483
제4장 평양방문
美 정부로부터 평양방문 요청 받다 = 491
숙고 끝에 초청장을 받고 가기로 = 497
평양 향발(1974. 7. 9) = 500
모스크바 도착(1974. 7. 13) = 502
평양행 기체안에서 = 507
평양 도착(1794. 7. 16) = 511
김중린과의 공식면담 = 513
평양주변 시찰 - 1974년 7월 = 514
한산한 평양거리 = 516
정준기가 베푼 만찬 = 516
혁명박물관 관람 = 517
학술토론 자유롭지 못한 평양 학자들 = 519
피바다 가극관람 = 521
청산리 협동농장과 탁아소 시찰 = 522
平統委, 美 정부의 정책전달 여부에 또 촉각 = 524
2차 학술토론 = 526
복숭아 주는 여인에게 연민의 정이 북바쳐 = 528
신변 안전위해 전담 취사반 편성 = 530
평양 산업 박물관 시찰 = 530
김일성 예방 종용 받았으나 = 532
교육시설 시찰 = 533
아동궁전 = 535
김중린등과 2차회의 = 536
나의 평화통일 방안을 구체적으로 설명 = 537
방문 마지막날 평양관광 = 544
출발 마지막 회의 = 548
5천달러 단호히 거절하고 돌려줘 = 552
평양을 떠나 귀환 길에(1974. 7. 26) = 554
귀가 후 한반도 생각 = 558
南昌祐교수의 동경(東京) 기자회견 = 562
북한공작원에게 속았다는 보도에 충격 = 563
한국정부의 악선전과 음해 = 566
평양방문후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信念이 굳어져 = 569
제5장 안정된 가정생활
미국의 출중한 교육자상 받아 = 570
아내는 교수이면서 가정에 충실한 현모양처 = 571
강도 잡아 유명해진 장남 효수 = 572
자녀들 모두 잘 자라 = 573
나의 자녀 교육방침 = 574
차남 경수는 육상선수에 우등생으로 의예과 진학 = 576
수학에 출중한 3남 진수는 농구선수로 지역에서 유명해져 = 576
외동딸 윤화는 전학년 ALL A학점으로 하버드에 입학 = 578
막내 완수는 정구·농구·골프의 주장을 하며 역시 하버드에 입학 = 581
6년만에 영구직 교수 임명 받아 = 583
美 시민권 신청자격 있으나 안해 = 583
생전 처음 단란한 가정생활 = 584
조국을 생각하면 몹시 그립고 안타까워 = 585
박정희 피살소식에 '올 것이 왔구나' 생각 = 586
12·12는 군사반란 = 587
전두환 일당의 국권탈취는 5·16에 이은 제2의 군사정변 = 589
제6장 한국문제 집중연구와 그 논문발표
美 정치학회에서 '한국정치정세' 논문 발표 = 590
주미공사 손장래장군의 訪韓요청을 받고 = 593
13년만의 한국방문 = 595
또 정보부의 감시받아 = 597
전두환에게 민정복귀를 직접 말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애석 = 600
Stanford 대학교 Hoover 연구소의 초빙학자로 = 601
북한 平統委의 초청을 거절 = 602
Hoover에서 연구한 70년대 한반도 內外문제들 = 605
연구결론, 남북대화는 재개될 것이고 4강은 남북한을 교차승인할 것 = 612
연구논문, Asian Affair 誌등에 실려 = 614
또 하나의 논문 '대한민국의 국가발전과 육군의 역할' 발표 = 616
정교수로 승진(1987년) = 624
앤아보에 있는 미시간대학교에 한국문제연구소 설치 = 626
'남북통일에 대한 조망' 논문발표 = 626
대학원생들에게 가르친 동북아 정치론 = 633
제7장 명예교수로 은퇴
은퇴요청 서한 보내면서 만감이 교차 = 639
오랜만에 온 가족과 친지들이 모인 고희 축하연 = 640
나의 軍복무와학문연구의 근본목적은 조국의 평화통일과 자유민주체제 건설 = 642
4반세기 교수생활에서 명예교수로 은퇴 = 646
회고록 집필을 끝내면서 = 649
편집을 마치고 = 657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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